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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내당동

1887년경에 안땅골이 유래되어 현재의 동명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땅골은 현 낙동강수원지 앞 동남편 산 아래에 고목소나무가 3그루가 있었는데 이 나무를 당산목이라 불렀고 그 나무가 있던 안쪽에 위치한 마을을 안땅골(內唐山)마을이라 하였고 동남쪽 현 두류공원 야구장 서편산아래에 위치한 마을을 바깥땅골(外唐山)마을이라 불렀으며 마을 사람들은 5월 파종을 끝낸 후와 10월 추수를 마친후 술과 떡을 만들어 이 나무밑에서 제를 올렸으며 이를 당산제(唐山祭)라 하였다.

비산동

선조(宣祖) 41년(1608)에 해주오씨(海州吳氏), 인동장씨(仁同張氏), 경주최씨(慶州崔氏)의 세성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하며, 옛날에는 이 지역일대가 평야였는데 어느 따뜻한 봄날 갓 시집온 새댁이 달천(達川, 현 달서천(達西川))에 나와 빨래를 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그윽한 음악소리가 들려오기에 고개를 들어보니 서쪽에서 커다란 산이 구름인양 둥둥 떠 날아오고 그 위에서 음악소리가 있어 놀랍고 기이하게 여긴 새댁이 "산이 날아온"라고 소리치자 구름처럼 두둥실 떴던 산이 그 자리에 내려앉아 지금까지 평야였던 곳에 산이 생기게 되었다 한다. 그곳이 지금의 비산1동(飛山1洞) 일대의 비봉초교(飛峯初校)가 들어선 산이었고 그때부터 날아온 산이라 하여 날뫼(날매)라 불렀고 그 것이 오늘의 비산동의 동명이 된 것이라 한다.

평리동

본래 대구시 서중면(西中面)의 지역으로 들이 3면에 있으므로 들말평야라 하였으며 1941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장등곡(長嶝谷), 도장곡(道藏谷)을 병합(倂合)하여 평리(坪里)라 해서 달성군(達城郡)에 편입되었다가 1938년 10월 1일 대구부(大邱府)에 편입되었다. 또한 평리동(坪里洞) 북서쪽에 "살나들"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이곳은 대구에서 서울로 왕래하는 곳이었으므로 "서울나들이"라 하던 것이 "살나들"로 변한 것이다.

상리동

원래는 상리(上里)라 하였는데 가르뱅이 위쪽이 되므로 이렇게 불렀는데 '웃마' 라고도 하였다. 대구부 달서면의 지역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가르뱅이와 새방골을 합하여 상리동(上里洞)이라하여 달성군 달서면에 편입하였다가 1938년 10월 1일 대구부로 편입되었다. *새방골(新坊谷) 현재의 상리1동으로 전설에 의하면 달성군 신당리 금호강 하류에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돌풍이 불어 집이 날아와 떨어져 살고 있는 곳이 지금의 『새방골』이라 한다. 처음 함양 조씨가(1가구) 개척하고 살았으나 임진왜란 때 왜란을 피해 진주 강씨가 정착하게 되어 그로 인해 새로 집이 생겼다고 해서 『새방골』이라 한다. 『새방골』은 원래 달성군 달서면 상리1동에 속했으나 1930년 대구시에 편입되었다.

중리동

지금부터 약 300년전 석씨 가문이 처음 거주한 후 밀양 박씨, 나주 정씨, 경주 최씨, 수원백씨 등이 이주하여 자연부락을 이루었으며, 평리동과 상리동(가르뱅이)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중리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쾌이방(掛耳方)·가르뱅이 현재의 상리2동 일대이며 와룡산이 귀처럼 길게 생겼다고 해서 "괘이방(掛耳方)"이라고 부르다가 발음상 점차 「가르뱅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고려조 이전부터 부락형성이 이루어졌으며, 한일합방 전에 절둑골(寺谷), 대촌골(大村谷), 밭골작(田谷), 당넘어골을 합쳐 「괘이동(掛耳洞)」으로 명명하였다.

이현동

옛날에는 현재의 이현동에 강물이 흘렀으며 그 강가에 오래된 배(梨)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그 나무에 배(船)를 묶었던 곳을 중심으로 이현동이라는 마을이 형성되었고 가르뱅이와 새방골에서 이 마을로 오기 위해서는 고개를 넘어야 했기 때문에 배고개 마을이라 불러졌다. *배고개 옛날에는 현재의 이현동에 강물이 흘렀고 그 강가에 오래된 배(梨)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그 나무에 배(船)를 묶은 것이 이현동이라는 마을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가르뱅이 새방골에서 이 고개를 넘어야 당시 성내를 출입이 가능하여 많은 사람들이 넘나드는 곳으로 배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원대동

삼국시대 신라가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수하기 위하여 화랑도들의 심신을 단련할 수 있는 전국명소를 두루 다니면서 수련을 하게 하였는데 이들의 숙식소(宿食所)로 만든 곳을 원(院) 또는 노원(魯院)이라 하였다 한다. 이와 같이 역사속에서 옛날 이곳에 대노원(大魯院)이 있었던 터(垈)라 하여 원대(院垈)라 하고 이것이 동명으로 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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