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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메기

우리 지역의 무형 문화재입니다.

대구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4호천왕메기
기능보유자
김수기(金守基)
지정일
1989. 06. 15
전수관
대구광역시 서구 이현동 48-144 (053-555-1175)
  • 첫번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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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왕메기 보존회 이미지
  • 천왕메기 보존회 이미지
사진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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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배경과 유래

  • 천왕메기란 오랜 옛날부터 현재의 비산동 일대 주민들이 신안해온 기천왕, 중천왕, 말천왕에 대한 지신풀이이다. 기천왕은 현재의 북비산네거리 위쪽에 큰 고목이 있으며, 말천왕은 현 비산3동 삼성예식장 위치에 역시 고목이 있었다. 중천왕은 현 비산1동 1번지 자리에 위치하였는데, 고목의 천왕목(天王木)과 사당 그리고 조산(造山)의 세 가지가 짝이 되어 있었고, 사당 안의 벽에는 천왕(天王)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사당과 조산(造山)은 1960년대 이후, 대구시의 도시개발과정에서 철거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천왕메기는 6·25전쟁 이전까지도 관행되었던 지신풀이이다. 구전에 의하면, 약400년 전 대구지방에서 계속된 가뭄과 돌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민심이 흉흉해 졌을때, 마을주민들이 중천왕자리에 흙으로 당집을 짓고 치성을 드렸다 한다. 그 뒤, 주민들은 오고 가는 길목에 있던 당집에 돌을 하나씩 던지게 되었다. 그 돌이 쌓여 조산이 되었고 주민들은 여기에 돌을 던지는 것을 천왕에 대한 치성으로 여기게 되었다.
    해마다 정초가 되면 마을 주민들은 심신을 깨끗이 하고 의복을 단정히 하여 제단에 돼지머리와 술, 떡을 차려 놓고 천왕기를 높이 들어 천왕제 지내기를 계속해 왔다. 치성이 부족하면 또 다시 가뭄과 질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에 방공호를 만들기 위하여 이곳을 팠을 때 엄청난 엽전이 나와 주민들을 놀라게 한적이 있다고 한다.
    보통의 지신밟기가 가가호호에서 이루어지는 데 비하여 천왕메기는 마을굿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천왕메기는 대내림→제관 선출(정초)→질굿→문굿→고사 독축→천왕메기→마을굿의 절차로 이루어진다. 이 가운데서 마을굿은 농악만의 절차이며, 문굿, 천왕메기는 지신풀이이며, 고사와 독축은 순수한 유교식 방식으로 이 천왕메기는 그 이름을 불교적인 것으로 본다면, 무교(巫敎), 불교, 유교의 습합으로 하나가 된 제의무악(際儀舞樂)이라 할 것이다.
    천왕메기는 6·25전쟁 이후 한때 사라진 것을 1988년 10월, 당시 대구광역시 문화재위원인 고 김택규 박사와 고 권영철 박사 등이 발굴하였다. 그리고 그해 제2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하였고, 다음해인 1989년 6월 15일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잘 전수되고 있다.

주요수상 및 행사참가 연혁

  • 1978. 08. 02 대구 비산농악단 상쇠 고.임문구 선생께 꽹과리 가락사사
  • 1982. 06. 15 날뫼북춤 고.김수배 선생께 북 사사
  • 1983. 10. 23 제24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날뫼북춤 (문화공보부장관상)
  • 1984. 10. 22 제2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천왕메기 (장려상)
  • 1989. 06. 15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4호 비산천왕메기 예능보유자 지정
  • 1994. 02. 19 영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
  • 1995. 01. 01 한국예총 대구시 부지회장역임 (1995. 01. 01~2001. 12. 31)
  • 1996. 07. 01 대구광역시장 표창장 수여
  • 1997. 05. 03 일본히로시마 대구광역시 자매결연식 축하공연
  • 1997. 10. 18 제3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비산농악 (문화체육부장관상)
  • 1997. 11. 12 제11회 금복문화재단 금복문화상 수상
  • 1999. 10. 06 아프리카 케냐 사피리파크 야외공연장 대구문화사절단
  • 2004. 08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연합회 초대 회장역임
  • 2004. 10 .20 제24회 대구광역시 문화예술상 수상
  • 2009. 10. 20 자서전 - 꽹과리로 한우물을 판 국악인 김수기 발간
  • 현재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4호 천왕메기 예능보유자 및 보존회장

구성 인원

  • 50명 (축관, 징, 북, 장구, 기수, 소고, 대감, 각시, 포수, 대잡이, 태평소)

연행 시간

  • 60분

연행 과정

  • ① 질굿 : 마을의 모든 패랭이(잽이)패가 당산제를 모시는 천왕당 문 앞까지 이동하면서 치는 굿이다. 이동 수단인 동시에 당산제를 드린다는 것을 온 마을에 알리는 방법이기도 하다.
  • ② 문굿 : 천왕당 앞문에 도착하면 다드래기가락으로 짧게 흥을 돋운 후 문굿 사설로써 모든 부정한 액과 살을 물리치고 한해의 만복을 기원한다.
  • ③ 엎어빼기 : 빠른 덩더궁이 장단(자진모리)으로 이루어지며, 앉고 넘는 동작이 반복된다. 음양의 이치를 표현하는 대목으로 씩씩하고 활달한 춤판이다.
  • ④ 천왕제 : 빠른 덩더궁이 장단(자진모리)으로 아루어지며, 앉고 넘는 동작이 반복된다. 음양의 이치를 표현하는 대목으로 씩씩하고 활달한 춤판이다.
  • ⑤ 천왕메기굿 : 흥겨운 살풀이장단에 맞춰 산과 물과 나무 등 만신에 얘를 갖 추고 천왕전에 동네의 안녕을 비는 천왕메기굿을 한다.
  • ⑥ 천왕메기 지신풀이 : 천왕당에 대한 지신풀이로 말의 모든 병고와 액을 쫓는 다양한 사설을 읊으며 축원 발원한다.
  • ⑦ 천왕굿 : 지신풀이가 끝나면 천왕당 앞에서 또 흥겨운 굿판이 벌어지는 마당이다. 천왕당 앞에서 행하여지는 굿이라 하여 천왕굿이라 한다.
  • ⑧ 천왕놀이 : 지신풀이와 천왕굿이 끝나면 천왕당을 돌아 기천왕과 말천왕 앞에서 한판 굿을 한다.
  • ⑨ 마을굿 : 삼천왕에 대한 굿이 끝나면 마을 사람들의 놀이인 마을굿으로 이어진다. 이때에는 풍물쟁이들의 놀이순서에 따라 정적궁이, 반직굿, 엎어빼기, 다드래기, 강강술래, 허허굿, 오방진, 모듬굿 살풀이, 개인놀이 덧배기 등으로 굿이 이루어진다.

세부내용

날뫼북춤 보존회
구분 내용
종목 대구광역시무형문화재 제4호
명칭 천왕메기(天王메기)
분류 무형유산 / 전통연행 / 놀이 / 세시놀이
지정(등록)일 1989.06.15
소재지 대구 서구 당산로 403 (이현동)
관리자(관리단체) 김수기
상세문의 대구광역시 서구 문화공보과(053-663-2184)
비산 농악은 날뫼라고 하는 비산동에서 자생한 농악이다. 이 농악은 아득한 옛날부터 이지역 주민들이 신앙해 오던 동제당인 천왕당(기천당·중천당·말천당)에서 정월 보름에 행사하던 동제인 천왕메기굿을 할때의 지신풀이에 그 모태를 두고 발전해 온 것 같다.
비산 농악은 정월 상원의 천왕메기와 지신풀이뿐만 아니라 이 관도를 오고가던 원님의 행차 때에는 원고개에서 놀았다는 옛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비산 농악은 농사굿의 성격보다 군사굿이라 할 만한 성격이 짙은 것이다. 전채의 놀이는 12마당으로 되어 있으나 전성기에는 마당 수를 늘려서 얼마든지 긴 시간을 놀 수 있었다고 한다.
서구에는 6·25전쟁 전까지 기천왕, 중천왕, 말천왕을 모신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기천왕은 서구 비산1동의 원고개 시장 부근에 있었고, 중천왕은 비산1동 1번지 옛 인동촌 시장 부근에 있었고, 말천왕은 지금의 삼성예식장(비산2,3동)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6·25 전쟁 전에는 이 사당 앞에서 제를 지내왔는데, 제를 지내고 나면 이어서 비산농악 한마당을 놀았다고 한다.
그런데, 1965년 경 도시개발을 하면서 이천왕당들은 모두 철거되어 버렸다고 한다. 1988년에 대구시에서는 천왕당 발굴 작업을 하여, 1989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하였고, 1989년 6월 15일에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 달성군에는 공단 내에 천왕당이 옛 모습 그대로 존재하며, 천왕당 내에는 천왕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