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아이콘
  • 서구관광
  • 테마관광
  • 그린서구
  • 와룡산
  • 프린터

와룡산

기본정보

  • 장소 대구광역시 서구 이현동 와룡산
  • 문의처 문화홍보과 053-663-2181

소개

와룡산은 멀리서 바라보면 산의 모습이 마치 용이 누운 형국과 같다고 하여 붙인 이름인데, 하늘에서 보면 용이 누운 자태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와룡산은 이처럼 특이한 산세로 주목을 끌지 않을 수 없는데,우리나라에는 네 개의 와룡산이 있다.
경남 사천의 와룡산, 충북 제천시 덕산명 신현리의 와룡산,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단천리의 와룡산과 함께 대구의 와룡산이 그것이다.
이 와룡산들은 모두 명산이어서 등산객이 줄을 잇거나 고대의 문화 유적이 있는 산이다.진달래 군락지는 금호강쪽으로 흘러내린 용미봉 일원으로 매년 아름다운 진달래가 장관을 이룬다. 아름다운 군락지의 자태는 물론 동쪽으로는 금호대교, 서쪽으로는 와룡대교를 조망할 수 있는 용미봉이 도심 속 시민들에게 쾌적한 자연환경으로 여유 있고 건강한 생활을 제공하는 진달래 군락지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와룡산 이미지1
  • 와룡산 이미지2

와룡산은 해발 299.6m 이며, 서구와 달서구 쪽이 용의 꼬리와 몸체 일부이고, 머리는 달성군 다사 쪽으로 놓여 있다. 와룡산에 읽힌 이야기는 여러 가지가 전해지고 있다. 아주 오랜 옛날에 산 아래에 옥연(玉淵)이 있어 용(龍)이 노닐다가 그 못에서 나와 막 승천하려고 하는데 지나던 아녀자가 이를 보고 놀라서 "산이 움직인다."하고 소리치자, 이 소리를 들은 용이 승천하지 못하고 떨어져서 산이 되었다고 하여 와룡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편, 임진왜란 때에 원군으로 우리나라에 온 중국의 이여송이 이 산막의 정기가 매우 뛰어나 많은 인재가 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산의 맥(脈)을 자르니 그 곳에서 검붉은 피가 솟구쳤다는 이야기도 전해 오고 있따. 또, 어떤 이는 천상의 미움을 받은 용이 장군의 칼에 맞아 떨어져 누운 것이 지금의 와룡산이라고도 한다. 산의 형상은 용이 똬리(물동이를 머리에 일 때 받치던 왕골 잎 등으로 만든 동그란 받침대)를 틀고 있는 모습이기에 꼬리와 머리 부분이 아주 가깝다. 『경상읍지』에 의하면 이곳을 성산봉(城山峯)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서쪽의 성이라 하여 이 일대를 성서라 부른다.

와룡산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 이미지와룡산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 또한, 대구의 분지가 형성될 때 팔공산이나 비슬산 등 주위의 산들은 그 지세가 대구분지를 향하여 뻗어 있으나, 오직 와룡산만은 용이 등을 대구로 향하여 돌아누워 있는 형상을 보이므로 역산(逆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구마고속국도 입구 서편 주변에 위치한 산으로, 차츰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주변의 공원화로 공휴일에는 인근 주민들의 등산, 휴식처로 사랑과 보호를 받고 있다.
와룡산은 방천동(坊川洞)에서 서재(鋤齋)동과 달서구 성서의 죽전(竹田), 신당(新塘), 용산(龍山), 파산(巴山), 파호동(巴湖洞), 서구 상리동(西區 上里洞) 등 여러 동과 접해 있는 산이다.
와룡산은 다른 산 셋을 합하여 보면 마치 용의 엎드려 있는 자세이기에 와룡산(臥龍山, 299.6m)이라고 명명하였다. 와룡산은 다사읍 방천동 용두봉(龍頭峯)에서 시작하여 산의 중앙부가 말 발굽형으로 되어 과상분지(鍋狀盆地)를 형성하고, 이곳에 농토와 부락이 형성되어 있다. 이곳 토질은 화강암이다. 대표적인 부락에는 방천리(坊川里)가 있다.

와룡산으로 오르는 길섶에 있는 돌탑 이미지와룡산으로 오르는 길섶에 있는 돌탑 와룡산 일원은 고대유물의 보고이다. 1923년 일본인들이 와룡산에서 달성공원 쪽으로 가는 구릉지(지금의 내당동, 중리동, 비산동 일원)에서 수백 기의 수혈식 석곽묘(냇돌로 깐 덧널묘)를 발견했는데 이 묘제는 가야의 묘제였다. 이로 미루어 보아 독립된 가야 나라가 이 와룡산 기슭에서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때 발굴된 유물은 출자형 입식 금동관, 금귀걸이, 은제 허리띠, 금동 신발 등의 장식물과 환두대도, 검과 창 등, 미늘쇠와 쇠살촉 등 무기류, 안장가리개, 발걸이 재갈 등의 마구류, 등잔울 등이었다.
1974년에도 와룡산 기슭에서 많은 유물이 쏟아졌는데 청동기와 철기시대 초기의 유물로서 동과, 청동재갈, 철재갈, 말얼굴가리개와 말방울, 중국거울인 한경(漢境), 모방경 등이었다. 이들 유물로 보아 부족국가의 중심세력은 와룡산에서 시작해 차차 대구시내 지역으로 그 세력을 넓혀간 것으로 보인다.

VR영상

위치 및 오시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