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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뫼북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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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2호

    날뫼북춤

    • 기능보유자

      윤종곤
    • 지정일

      1984. 07. 25
    • 전수관

      대구광역시 서구 이현동 48-144
    • 홈페이지

      홈페이지 바로가기

생성배경과 유래

날뫼북춤은 비산동 일대에서 전승되어 온 민속춤으로 경상도 특유의 덧배기 가락에 맞추어 추는 춤이다. 비산농악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만 북만 가지고 추는 북춤으로 발전한 점이 특이하다.
날뫼란 지명은 다음과 같은 전설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아득한 옛날 달내[達川]의 냇가에서 빨래하던 여인이 서쪽 하늘에 요란한 풍악소리를 듣고 바라보니, 하늘에서 산모양의 구름이 날아오고 있었다. 여인이 이를 보고 놀라 "동산이 날아온다."고 비명을 질렀더니, 날아오던 산이 땅에 떨어져 동산이 되었다. 날아온 산이라 하여 날뫼라 부르게 되었고, 한자로는 비산(飛山)이라 쓰게 되었다. 현재의 비산동 지명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지금의 날뫼 원고개는 달성(達城)과 금호강 사이의 넓은 들판을 지나는 서울나들이길이었다. 옛날 한 원님이 특히 백성들의 추앙을 받았는데, 이 원님이 순직하자 백성들은 이 원님을 추모하기 위하여 이곳에 무덤을 쓰고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 특히 제사때에는 백성들이 원님의 혼령을 달래기 위하여 북을 울리며 춤을 추었는데, 여기서 유래한 것이 날뫼북춤이라고 전한다.
옷차림은 모두 흰바지저고리에 감색 쾌자를 입고 머리에 흰 띠를 두르며 연행과정은 정적궁기, 자반득이(반직굿), 엎어빼기, 다드래기, 허허굿, 모듬굿, 살풀이굿, 덧배기춤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상경력

  • 1990. 05. 29

    (사)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농악부 참방상)
  • 1992. 09. 25

    문화부장관 (민속무용부문 우수상)
  • 1997. 10. 17

    문화체육부장관 (농악부문 우수상)
  • 2005. 05. 07

    전국청소년지도자대상 (전국청소년신문사 사장) - 대상
  • 2008. 12. 17

    뉴스웨이신문사 문화인상 (2008 장한한국인상) - 특별상

전승 활동 사항

  • 1993

    일반풍물단체 날뫼북춤 전승 : 19개 단체 / 연 1,600명
  • 1995

    각급학교 날뫼북춤 전승 : 16개 학교 / 연 2,155명
  • 1997

    날뫼북춤 하계전승 : 5개 학교 / 연 120명
  • 2000

    날뫼북춤 무료강습 : 일반인대상/ 연 150명
  • 2004

    날뫼북춤 지부구성 및 전승 : 4개 지부 / 연 137명

해외 공연활동 사항

  • 1995

    중국 청도 맥주축제(대구광역시 자매결연 도시)
  • 1997

    일본 히로시마 꽃축제(대구광역시 자매결연 도시)
  • 2005

    홍콩, 대만, 싱가포르 관광마케팅 홍보(대구광역시주관)
  • 2008

    체코슬로바키아 미야바 세계민속축제 북춤공연
  • 2010

    말레시아 세계민속축제 초청공연
  • 2013

    멕시코 싸카데카스 세계민속축제 초청공연

구성 인원

45명

연행 시간

60분

연행과정

날뫼북춤 연행과정(제목,내용)을 나타낸 표
제목 내용
① 정적궁이 북춤가락 중 군사굿의 요소가 두드러진 장단이며, 씩씩한 춤사위와 간결하고 웅장한 북소리에서
남성적인 기개를 느낄 수 있다. 비산동의 특색 있는 가락이다.
② 반직굿 일명 마당굿 또는 자반득이라고도 한다. 연풍대 돌아서 앉기, 서기, 북넘기 등 고난도의 북묘기가 펼쳐지는 마당이다.
③ 엎어빼기 빠른 덩더궁이 장단(자진모리)으로 이루어지며, 앉고 넘는 동작이 반복된다.
음양의 이치를 표현하는 대목으로 씩씩하고 활달한 춤판이다.
④ 다그래기 휘모리 장단의 경상도 표현이다.
웅장한 북가락과 회외리처럼 휘돌아가는 빠른 연풍대가 펼쳐지며 발재간이 돋보이는 춤이다.
⑤ 강강술래 전원이 원형 바깥쪽으로 향하고 옆으로 이동하면서 북을 치는데 순서는 좌·우·좌순으로 이루어진다.
⑥ 허허굿 질주하듯이 양 발을 번갈아 솟구쳐 뛰며 한번은 북편과 북태를 또 한번은 북편을 치면서 추는 씩씩한 기상을 뽐내는 춤이다.
⑦ 오방진 동·서·남·북·중앙의 다섯 방위에 화평과 강녕을 비는 춤판이며, 동작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진다.
⑧ 모듬굿 나는 듯이 뛰어 두 개의 원을 만든다.
모이고 흩어지면서 진행되는데, 다양한 춤사위가 펼쳐지며 가락이 변화무쌍하여 날뫼북춤의 진수라 할 수 있다.
⑨ 개인가락 북가락이 가장 발달된 것으로 엇박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은 북가락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외발 돌며 북태치기 등 개인 기량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⑩ 살풀이 굿거리장단으로 이루어지며 풍요와 환희를 표현하는 춤판이다.
느리고 단순하면서 중후한 맛이 나며 덩실덩실 흥에 겨워 추는 춤이다.
⑪ 개인놀이 북춤 중 소수의 기량 높은 북잽이들이 개인의 기술을 펼치는 대목으로 살풀이로 시작해서
덩덕궁이로(자진모리) 끝을 맺는데 최고 수준의 잽이들이 묘기를 펼치는 마당이다.
⑫ 덧배기 일명 덧배기들놀이 가락이라 한다.
덩더궁이(자진모리) 장단이 발달된 형태이며, 어깨춤이 발달되어 있다. 경상도 춤사위의 맛이 가장 잘 드러나는 춤이다.

세부내용

날뫼북춤 보존회
구분 내용
종목 대구광역시무형문화재 제2호
명칭 날뫼북춤
분류 무형유산 / 전통연행/ 무용/ 민속무용
지정(등록)일 1984.07.25
소재지 대구 서구 당산로 403 (이현동)
관리자(관리단체) 윤종곤
상세문의 대구광역시 서구 문화공보과(053-663-2184)
세부내용
구분 내용
지명전설 아득한 옛날 달내의 냇가에서 빨래하던 여인이 서쪽 하늘에 요란한 풍악소리를 듣고 바라보니 하늘에서 산모양의 구름이 날아오고 있었다. 여인이 이를 보고 놀라 “동산이 날아온다”고 비명을 질렀더니 날아오던 산이 땅에 떨어져 동산이 되었다.
날아온 산이라 하여 ‘날뫼’라 부르게 되었고 한자로 ‘飛山(비산)’이라 쓰게 되었다. 현재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의 지명이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날뫼의 전설은 옛 달구벌의 산성이던 달성(현. 달성공원)이 있던 산의 기원설화로 우리나라 상고의 신모신앙에 근원하는 지명전설이다」
날뫼북춤의 기원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에서 자생 하여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비산농악이 오늘날까지 전승 발전되어 오고 있다.
특히 큰북만으로 이루어진 북춤은 그 이름이 날뫼북춤으로 비산농악에 뿌리를 두고, 두드러지게 발달한 큰북만으로 추는 북춤으로, 대구의 대표적인 민속무용이다.
날뫼(현재의 비산동)의 “원고개”는 달성과 금호강 사이의 넓은 들판을 지나는 “서울 나들” 길이었다. 옛날 고을의 원이 이 길로 부임할 때, 마을 사람들이 풍악을 울리고 춤을 추면서 맞이하던 관습이『날뫼북춤』의 기원이다.
옛지명 옛날의 지명은 달성군 달서면 날뫼마을이다.(現 서구 비산동 일원) 또한 지역의 전통 문화재산이며, 현재 연간 1회의 해외공연과 70회 이상의 국내공연을 하며 서부고, 동부공고, 북중, 대평중, 비봉초 등 시내 초, 중, 고등학교 20개교에 비산농악과 날뫼북춤을 전수시키고 있다.
날뫼북춤 보존회는 예능보유자 윤종곤 선생님 外 정단원 40여명과 4개의 지부로 전승 보존하고 있다.
형성과정 16세기경 경상감사에 부임해 정사를 보시고 추앙을 받던 원님이 순직하매 있어 원고개(현. 비산동 원고개시장)에 무덤을 쓰고 춘추로 제향 하였는데 이때 외로운 원님의 혼령을 달래기 위해 북춤을 추었다 한다. 그것이 오늘의 날뫼북춤으로 전승되어지고 있다.
연행과정 12마당 날뫼북춤은 1984년 7월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어
전승 보존 되고 있으며 총 연행과정이 12마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길놀이의 질굿과 길군악으로 시작하여 정적궁이 ⇨ 반짓굿 ⇨ 엎어빼기 ⇨ 다드래기(휘모리) ⇨ 물레돌기 ⇨ 허허굿 ⇨ 오방진 ⇨ 모듬굿 ⇨ 개인가락 ⇨ 살풀이굿(굿거리) ⇨ 개인놀이 ⇨ 덧배기굿을 하고 인사를 한다.

비산 농악은 날뫼라고 하는 비산동에서 자생한 농악이다. 이 농악은 아득한 옛날부터 이지역 주민들이 신앙해 오던 동제당인 천왕당(기천당·중천당·말천당)에서 정월 보름에 행사하던 동제인 천왕메기굿을 할때의 지신풀이에 그 모태를 두고 발전해 온 것 같다.

비산 농악은 정월 상원의 천왕메기와 지신풀이뿐만 아니라 이 관도를 오고가던 원님의 행차 때에는 원고개에서 놀았다는 옛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비산 농악은 농사굿의 성격보다 군사굿이라 할 만한 성격이 짙은 것이다. 전채의 놀이는 12마당으로 되어 있으나 전성기에는 마당 수를 늘려서 얼마든지 긴 시간을 놀 수 있었다고 한다.

서구에는 6·25전쟁 전까지 기천왕, 중천왕, 말천왕을 모신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기천왕은 서구 비산1동의 원고개 시장 부근에 있었고, 중천왕은 비산1동 1번지 옛 인동촌 시장 부근에 있었고, 말천왕은 지금의 삼성예식장(비산2,3동)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6·25 전쟁 전에는 이 사당 앞에서 제를 지내왔는데, 제를 지내고 나면 이어서 비산농악 한마당을 놀았다고 한다.
그런데, 1965년 경 도시개발을 하면서 이천왕당들은 모두 철거되어 버렸다고 한다. 1988년에 대구시에서는 천왕당 발굴 작업을 하여, 1989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하였고, 1989년 6월 15일에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 달성군에는 공단 내에 천왕당이 옛 모습 그대로 존재하며, 천왕당 내에는 천왕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