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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처눌

08손처눌
자(字)
기도
호(號)
모당
본관(本貫)
일직
1583년(선조 16년)에 여헌 장현광 선생과 함께 경학을 강론했다.
1592년(선조 25년) 왜란이 일어남에 아우 오매정 처약과 함께 창의하여 의병장에 추대되어 팔조령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정모호란 때에는 칠십이 넘은 고령임에도 의병장이 되어 만반의 준비를 다하였다. 임란 중에 연이어 상을 당하여 그 예를 다하지 못했다 하여 묘소 앞에 집을 지어 이곳에서 종신토록 시묘살이 하는 뜻으로 영모당이라하여 편액을 하였는데, 제자들이 이를 호로 삼아 모당이라 하였다.
전쟁으로 학교가 황폐하게 되었는데, 선생은 고을 사람들을 창솔하여 먼저 학교를 건립하고 백록동규와 함께 『심경』과 『근사록』등을 강론하였다. 매월 삭망에 여러 유생과 더불어 연경서원 선사재에 모이고 분암, 동학암에서 경전의 뜻을 강론하였다. 학령 20조를 지어 좌우에 걸어 두고 매일 아침에 반드시 의관을 정제하고 강당에 나와 앉아 여러 생도들이 들어와 절하여 상읍례를 행하는 규범으로 후학들의 평생 교화사업에 일념하였다.
선생이 별세한 지 10여 년 뒤에 사림에서 건의하여, 청호서원에 위패를 모시고 제향하여 지금까지 존모하고 있다. 선생께서는 의병장으로 나라에 충을 다하고 후학교화에 전력을 다해 『달성지』에 유행 덕행으로 달성십현에 소재되어 있다. 48세 되던 1600년(선조 33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77세 되던 1629년(인조 7년)까지 30년 동안 지속하였는데, 현재 7책이 전하고 있으며 『통강제자록』에 문하생 202명이 올라 있다. 문집은 『모당집』9권 3책, 일기 7책, 『통강록』1책이 있다.